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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는 11월, 경주로 (2013년)

 

# 1. 출발

새벽 5시. 어젯밤 맞춰둔 핸드폰 알람 소리에 몸을 잠시 뒤척였다.

기차시간은 새벽 6시 반이다.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기껏 예약해 둔 기차를 놓칠지도 모른다.

학창시절 부터 사회생활을 했을 때까지 나의 기상시간은 언제나 새벽이었다.

회사를 관둔 후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은 힘겨운 일로 변해버렸다.

어쩌면 나는 이제까지 부족했던 아침잠을 채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특별하다. 무료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짧게나마 여행을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전적으로 나 자신에게만 의지하며 떠나는 여행이기에, 다른 때와는 달리 조금은 긴장되며 몸에 힘까지 들어가는 것 같다.

 

서둘러 준비해 집을 나선다. 새벽 5시 반. 늦가을 새벽 공기는 맑고 상쾌하다.

시간이 이른 새벽인데도 지하철에는 사람이 꽤 있었다. 새벽 지하철의 풍경이 문득 낯설게 다가온다.

언젠가 과거의 나에게 이런 풍경은 익숙한 것이었지만.

2호선을 타고 시청역에서 1호선을 갈아타, 곧 서울역이다.

새벽의 서울역은 내가 봐왔던 그 어느 때보다 사람이 적고 한산한 모습이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직접 기차표를 끊어, 내 의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동대구로 향하는 KTX 열차에 탑승했다.

새벽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새벽부터 기차를 타고 어디들 그렇게 바삐 가는 것일까.

기차에 낮자마자 이어폰을 귀에 꽂고 바로 곯아떨어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모습에서 문득 과거의 내 모습이 아른거렸다.

나는 아침잠이 많지만, 왠일인지 이날 아침은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여행에 대한 기대반 걱정반으로 창밖을 보며 이어폰 너머 흘러나오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며 기차에 몸을 맡겼다.

 

"동대구 역입니다."

신경주역이 아닌 경주역으로 향하는 표를 끊었기 때문에 나는 동대구역에서 잠시 하차했다.

환승을 위해 내린 동대구역이 낯설다.

인천에서 태어나 줄곧 인천에서 살았고,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는 나에게 '경상도'라는 지역은 많이 낯설다.

고향이 김해이시던 외할머니의 사투리를 들으며, 내 나름대로 익힌 막연한 느낌이 전부라면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아침의 동대구역에는 큰 짐을 들고 움직이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많이 보였다.

위쪽과는 사뭇 다른 느낌나는 다르고도 낯선 풍경 속에서 잃어버린 옛 모습을 쫓고 있었던 것 같다.

동대구역에서 환승을 위해 승강장으로 내려간 곳에 열차가 들어와 있었다.

 

영천을 거쳐 경주로 향하는 무궁화호는 5량이 될까?

난생 처음보는 작고 아담한 열차였다.

내 자리는 따스한 가을볕이 잘 드는 창가쪽 자리였다.

KTX 보다는 느리지만, 천천히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 무료함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창밖의 풍경과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본격적인 여행 시작 전 설렘을 느꼈다.

경주로 향하는 무궁화호는 중간 중간 작은 역에서 정차했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말에서 경상도 사투리가 들려온다.

아, 정말 이제 벗어나 정말 남쪽으로 내려왔구나.

경주로 향할 수록 점점 더 많아지는 승객을 싣고, 작은 무궁화호 열차는

그렇게 아름다운 가을 풍경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동대구역에서 1시간 반 남짓. 드디어 경주다.

눈부신 가을 햇살이 경주에 홀로 도착한 나를 반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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