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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아이가 소중하듯, 남의 아이도 소중한 존재이다.



지난 주말 음식점에 갔을 때였다.

어떤 아저씨가 아내 그리고 두 아들들과 함께 같이 왔다.

나는 옆자리에 앉아서 그들이 하는 대화가 본의 아니게 들리게 되었다.

자리가 모자라 그 아저씨는 작은 아들과 함께, 부인은 큰 아들과 함께 다른 쪽에 앉았다.

나는 이 아저씨의 작은아들 옆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음식점은 라면집이였다.

자리가 바 형태로 되어 있어서, 자리 앞쪽으로 조리를 하는 조리대가 있었다.

앳된 얼굴의 여자아이 4명이 음식을 정신없이 만들고, 서빙도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을까?

앳된 얼굴이지만 꽤 진지한 얼굴로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문득 올해 대학교에 들어간 막내동생이 생각났다.


"이봐 여기 그릇좀 줘봐"

라면을 먹고 있는데 옆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약간 짜증섞인 목소리.

"죄송한데요, 그릇이 평평한것 밖에 없어서요."

"오목한 거 없어? 라면이 뜨겁잖아."

약간의 대화가 오간 뒤 그 아저씨는 요구한 그릇을 받아냈다.

처음보는데 뒷말을 잘라버리는 무시하는 듯한 말투.

아무리 자기보다 어린사람이라고 해도

다짜고짜 뒷말을 잘라버리고 무례한 말투로 이야기를 한다.

그러고서 자기 아이한테 말한다.

"안 뜨거워? 여기 덜어서 호호 불어먹어."

"아빠, 근데 나 괜찮은데.."

일순간 머쓱.

그렇게 무례하게 쟁취한 그릇은 막상 아들은 별로 고마워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아들.

그리 과잉보호하지 않아도, 스스로 할 수 있는 나이인데

왜 저렇게 까지 과잉보호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자신의 아이가 소중하듯

남의 아이 또한 다른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임을 그는 모르는 것일까?


순간 작년 여름 오션월드에 갔었을 때의 일이 갑자기 생각났다.

오션월드에 가면 놀이터 같이 생긴 시설물의 맨 꼭대기에서

일정시간이 되면 담긴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곳이 있다.

사람들 모두 그 쏟아지는 물을 맞기 위해 모여있곤 한다.

그 곳에서 남편과 함께 물을 맞으며 하하호호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디선가 살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보세요! 지금 왜 물을 뿌리는 거에요? 지금 장난해요?"

인상이 안 좋아보이는 안경을 쓴 아저씨가

자신의 어린 아들 손을 잡고 어떤 남자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일부러 뿌린 건 아니에요."

그 남자는 오션월드 스텝으로 알바를 하고 있는 앳된 얼굴의 젊은이였다.

물 위에 떠다니는 쓰레기를 줍다가 그런 것 같은데..

소리친 아저씨는 자신의 아이 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고래고래 쳐가며

별 것도 아닌 것에 신경질을 내고 있었다.

즐겁게 가족과 놀러와서 무슨 난리법석이람.

더군다나 어이없었던 것은 그 아저씨의 아이는 멀쩡했다는 것.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는 그 아저씨의 어이없는 행동에 괜히 화가났다.

그 젊은이는 정작 가만히 있었는데.


이 두가지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두 가지.

하나, 아직 나는 아이가 없지만.. 자신의 아이가 소중하면 남의 아이도 소중하다.

둘, 과잉보호. 진정으로 자신의 아이를 위한 것일까?


진정으로 자신의 아이를 사랑한다면

남의 아이도 자신의 아이와 같이 존중해주며,

자신의 아이는 과잉보호보다는 더 엄하게 길러야 한다.

과잉보호를 통해 자란 아이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할 것이며,

과잉보호 과정에서 남에게 화를 내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그 아이 또한 그것을 보고 똑같이 무례한 사람이 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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