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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문화생활

천강에 비친 달

엘블 2015. 3. 1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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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강에 비친 달

 


천강에 비친 달

저자
정찬주 지음
출판사
작가정신 | 2014-09-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대장경』을 무지렁이 백성들 모두가 읽을 수 있도록 우리 글자...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나는 평소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는다. 대부분 소설들의 내용이 너무 허구적이거나 파격적이라서 내가 정서적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특히 현대소설의 경우 나 자신이 정서가 메말라서인지 상당히 공감하기 힘들어 읽다가 중간에 몇 번 책을 놓은 적이 있었다.(특히 나는 일본소설은 읽기 너무 힘들다...)

 

 '소설은 진실을 밝히는 횃불이 되어야 한다.' 어디선가 본 문장이다. 허구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추상적인 어떤 주제를 표현하는 것보다, 어느 정도 구체성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흥미까지 불러일으킨다면 좋은 소설의 기본 조건이 아닐까...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본다.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소설들의 대부분이 아마도 그럴 것이다. 단발성으로 화제를 받고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한 소설들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부족해서 일 것이다. 또한 마케팅의 힘으로 반짝하는 것일 수도.

 

 평소 즐겨 듣는' EBS 책 읽어주는 라디오'에서 1~2월 동안 나왔던 소설이 한 편이 있었다. 바로 '천강에 비친 달'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배우 강신일님과 EBS 성우들이 흥미진진하게 낭독했던 역사소설이다. 그 여운이 짙게 남아 책을 완독하고 싶어서 얼마 전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되었다.

 

▲ 천강에 비친 달

 

천강에 비친 달(月印千江)

 지금은 누구나 평등한 권리를 부여받은 민주주의 사회이지만, 조선시대는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유학을 바탕으로 한 유생들은 그 권력을 쥐고 놓지 않았고, 그들의 권력 바탕에는 익히기 어려운 중국의 글자 '한문'이 있었다. 불교의 폐단으로 역사 속에서 스러져간 고려의 역사를 들먹거리며 불교는 석교(釋敎)라 불리며 배척 당했다. 하지만 민간과 궁중에 지속되어온 뿌리 깊은 불교 사랑마저 배척할 수는 없었다.

 이 책의 제목 '천강에 비친 달'은 한자로 '月印千江'을 해석한 것이다. 그 뜻은 '달이 뜨면 천 개의 강에 비치듯 석가모니 부처님의 교화가 온 백성에 미치라는 것'이다. 세종이 손수 지은 최초의 찬불가인 월인천강지곡의 뜻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세종은 불교적 교화를 바탕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이다. 그리고 훈민정음의 창제 뒤엔 신미 대사가 있었다.

 

▲ 천강에 비친 달

 

훈민정음 창제의 숨은 일등공신, 신미 대사

 우리는 으레 훈민정음을 창제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역사 교과서에서 본 그대로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이 창제했다.'라고 답할 것이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웠고, 일반 역사서에도 그렇게 적혀있으므로. 하지만 이 책에서는 놀라운 진실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바로 훈민정음 창제의 숨은 일등 공신은 따로 있었음을 말이다. 신미대사는 범자에 능했던 승려로 비밀리에 세종의 명을 받고, 범자의 자음과 모음의 원리를 분석하고 연구하여 훈민정음을 만들어내었다. 훈민정음 자체가 범자를 참고로 만들어졌다는 것도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신미대사 외에 훈민정음 창제에 있어 왕실가족인 세자(문종), 수양대군, 안평대군, 정의공주 또한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이 새로운 사실로 다가왔다. 

 세종집권 당시 유교적 정치를 지향했던 관리들과 달리 왕실에서는 여전히 불교가 중요시 되었고, 불교적 가치를 바탕으로 정치를 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천강에 비친 달

[소설 속에 한글 창제의 원리가 자연스럽게 녹아있어 소설도 읽으며 한글에 대해 다시한 번 생각해보기도 했다.]

 

▲ 천강에 비친 달

[소설 속에 한글 창제의 원리가 자연스럽게 녹아있어 소설도 읽으며 한글에 대해 다시한 번 생각해보기도 했다.]

 

세종실록에 근거한 소설내용

 '한글창제는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의 창제물'이라고 철석같이 알고왔던 보통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고 난 뒤 그 실체를 모른다면 '흥미있는 소설이었군.'하고 그냥 덮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소설은 세종실록에 근거한 사실을 바탕으로 적어내려간 것이다. 물론 부분 부분 묘사나 스토리 전개는 작가의 의도대로 전개되었겠지만, 기본 스토리의 뼈대는 사실인 셈이다. 이 사실을 알고나면 소설 속 내용이 다시 보일 것이다.

 철저한 배불, 숭명 분위기 속에서, 아무리 왕이라고는 하지만 신하들의 눈치를 봐야했던 세종이 승려를 데려다 한자가 아닌 다른 글자를 만드는 일은 정말 위험천만한 일이었던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신미대사가 한글창제의 일등공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은 것은 신미대사를 보호하려는 세종의 뜻과 어떤 일에 일조했다는 것에 집착과 의미를 두지 않는 신미대사의 의중이 있었다. 하지만 세종실록과 훈민정음 서문에는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을 창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명백히 밝혀져 있다.

 

▲ 천강에 비친 달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 정음은 본래 중국의 문자를 의미하는 단어였다고.

신하들의 의중도 헤아려 이름을 만든 세종의 인품이 느껴진다.]

  

▲ 천강에 비친 달

[한글창제의 일등공신이었던 신미대사. 그의 이름이 훈민정음 서문에 등장하지 않는 이유.]

 

▲ 천강에 비친 달

 

우국이세 신미대사

 세종을 도와 위험을 무릎쓰면서 훈민정음을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신미대사. 그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지금 쓰는 한글은 어쩌면 이 세상에 영영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과학적인 글자 한글의 창제 비하인드 스토리에 신미대사가 중심에 서 있다. 그가 글자를 만드는 데 있어 시종일관 주지했던 것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 이었을 것이다. 세종 역시 그랬다. 세종을 도와 위대하고 아름다운 문자 한글을 창제한 신미대사는 우국이세라는 이름을 받아 마땅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소설

 '천강에 비친 달'은 작가가 우연히 복천사의 스님에게서 신미 대사의 이야기를 듣게 되어 쓰게 된 소설이라고 한다. 작가는 이 소설로 역사적 진실을 재조명하게 된 셈이다. 역사적 진실을 바탕으로 한 흥미로운 스토리와 작가의 훌륭한 필체가 소설을 읽는 내내 몰입감을 높였다. 소설이 끝난 뒤 신미대사에 대한 다른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분명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을텐데.

 반갑게도 '천강에 비친 달'은 아직 끝나지 않은 소설임을 작가가 직접 책의 말미에서 밝히고 있다. 사실 신미 대사의 전성기는 세조 때였다고 한다. 문종과 단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과 신미 사이에는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내심 기대된다. 언제 후편 소설이 출간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받은 잔잔한 감동을 그 때까지 간직하고 싶다.

 

BY 엘리스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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