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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장씨, 400년 명가를 만들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경북 영양의 작지만 고즈넉한 마을인 두들마을에 두 번 방문한 적이 있다. 경상북도는 지형상 우리나라에 침략이 있었을 때 그 피해가 적어 전국에서 고택이 제일 많이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예전에 읽었던 '외씨버선길'이란 책에서는 경상북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발전이 더디게 된 곳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손과 발이 덜 탔기에, 경북의 작은 마을 중 하나인 두들마을 역시 세간에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으리라.

 

 우연히 방문한 두들마을에서 나는 우리나라와 동아시아를 통틀어 최초로 여성이 적었고, 게다가 한글로 된 과학적인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놀라움을 넘어서 경이로움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음식디미방'과 더불어 책의 저자인 '정부인 장계향'의 일생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을 기회도 있었다. 단순히 옛 음식에 호기심이 집중되었던 나는 곧 그 분의 인생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여행은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지만, 때론 여행에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곤 한다. 두들마을을 방문 한 뒤에 생겼던 궁금증과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서 검색대에서 '음식디미방'이란 단어로 검색을 하니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안동장씨, 400년 명가를 만들다'. 음식디미방의 자세한 내용보다는 그 책을 완성하여 후대에까지 지혜를 물려준 정부인 장계향의 일생이 궁금했던 나에게는 딱 안성맞춤인 책이었다.

 

 나는 역사를 좋아하지만 조선시대의 지배관념이었단 '성리학'부분에 대해서라면 예외다. '성리학'이라는 단어에거 느껴지는 꼬장꼬장함과 왠지모를 고리타분함이 그 이유라면 이유다. 하지만 그녀의 생애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이해를 하려는 태도가 필요했다. 이 책은 역사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복잡한 역사배경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 시대의 분위기와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성리학에 대한 설명도 인물간의 대화나 에피소드에 잘 녹여내고 있어, 나처럼 특정 역사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독자들에게 꽤나 도움이 된다.

 

 

 성리학에 대한 탐구가 최고의 공부였던 시대.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그녀는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성리학적 가치를 본능적으로 습득했다. 일찍이 학문에 재능을 보였으나 성리학적 가치하에서 여성에게 학문이란 재능이 아닌 재앙임을 빠르게 깨닫고 자신의 재능을 철저히 숨기는 삶을 택한다.

 그녀가 살았던 시대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왜란이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어났고, 한창 시집왔을 때에는 병자호란으로 조선의 국왕이 삼전도의 굴욕까지 당하는 국가적 모독을 당하게 된다. 고고한 선비였던 그녀의 남편인 석계 이시명은 숭명의리를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었다. 결국 조정에 나아가는 뜻을 접고 평생 한중에 은거하며 학문을 수양하는 데 집중하는 삶을 살았다. 그녀 또한 남편의 생각과 일치했고 그저 묵묵히 곁에서 집안 살림을 꾸리며 자식들을 훌륭히 키워냈다.

 

 솔직히 성리학적 관념은 지금 내 입장에서는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는 것이 아닌 당시 사람들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숭명의리는 성리학에서 보면 의리와 충을 지키는 최고의 가치로 여겨졌던 것 같다. 지금 시각에서는 광해군의 실리외교가 더 좋은 평가를 받지만, 그 당시에 퍼져있는 성리학 관념에서는 납득하기 힘들었으리라.

 

 하지만 학문 기저의 여러 내용은 지금들어도 상당히 생각해봄직한 것들이 여럿 있었다. 그녀가 평생 중요시 여긴 가치는, 학문을 그저 배우고 익히는 것에서 나아가 몸소 실천하는 것이었다. 이런 가치는 그녀의 자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파되었다. 그리고 사람의 귀천을 중요치 않다 여겨, 집안의 노비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고 귀하게 대했으며,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덕망은 주변에 널리알려졌고 존경받았다.

 

 조선시대의 남존여비 사상은 그녀를 아녀자로서만 살게했다. 하지만, 지혜로운 그녀는 부엌과 일상적인 삶에서 성리학적 가치를 투영시켜, 거창하진 않지만 자신히 할 수 있는 나름의 실천방법을 찾고 제대로 실천했다. 책 곳곳에서 그녀의 인품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를 발견할 수 있는 이유다. 그녀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데도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몰입감과 감동을 주는 이야기 한 편으로 탄생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작가의 상상이 약간 더해졌다고는 하나 짐작컨데 그 분의 삶을 소설 형식을 빌어 보는데에는 해가 되기보다는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음식디미방'을 알게되고 그 저자의 삶에 대해 궁금하다면, 추천하는 책이다. 더불어 조선시대 중기의 역사의 한 단편을 소설로 읽을 수 있는 기회까지 얻을 수 있다.

 

 

 

[책에 밑줄 긋기]

P 93.

"무릇 사람의 배움이란 겉으로 드러날 때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하품下品은 말과 글로 나타내는 것이요, 중품中品은 행실로 드러나는 것이며 마지막 상품上品은 덕망으로 우러나는 것이니라. 상품이 우러날 때 내부에서 광채가 나느니."

 

P 225.

"내 오늘은 어미로서 재물에 대해 너희에게 일러둘 게 있다. 사람이 목숨을 잇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게 재물이긴 하다. 그러나 물고기는 향기로운 미끼 때문에 죽고 선비의 아름다운 이름은 재물로 인해 상하느니라. 재물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떠나서는 값이 없다. 남이 넉넉할 때 내 재물이 많은 것은 자랑과 여유가 되지만, 남이 모두 없는데 홀로 많이 가진 재물은 재앙일 뿐이다. 도둑들의 말에 필부가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재물이 죄가 있다 하였으니. 남이 모두 굶는데 홀로 가득한 곳간은 마침내 화를 부르는 문이 될 뿐이다. 너희들은 앞으로 그 이치를 잘 알아서 재물을 대하도록 하여라."

 

P 263.

"......성인은 도드라진 재주가 아니라 하루하루의 성실함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성인이라는 게 정녕 세상을 살아가는 보통사람보다 처음부터 재능이 빼어나고 특출한 거라면 따라가 볼 필요도 없는 거겠지. 하지만 성인의 용모와 언어란 처음부터 보통사람과 다른데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보통사람 안에 들어 있는 성인이 참다운 성인이지. 우주는 크게 성실하니 인간은 그것을 본받아 작게 성실하라는 말씀이 있지 않더냐. 성인이라 인륜을 지키고 남을 제 식구와 똑같이 아끼며 하루하루 삼가는 일상언행 속에 있는 것이니......"

 

BY 엘리스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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