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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를 찾았을 때였다.
부석사 입구에는 현지 주민들이 직접 수확한 채소와 과일 따위를 파는 작은 좌판들이 늘어서 있다.
이 좌판을 열고 있는 대부분은 연세 지긋한 할머니들이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부석사 방향으로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식사 때라 좌판의 할머니들도 식사 준비에 분주하셨는데,
한 할머니가 한 손에는 컵라면을, 한 손에는 김치가 담긴 반찬통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지긋한 연세를 짐작할 수 있는 하얀 백발과
얼굴과 손에는 세월의 흔적이 아로새겨진 굵은 주름이
마치 할머니가 살아온 지난 날들을 대신 이야기 해주는 것 같았다.
연세도 꽤나 있어보이시는 분이 끼니를 고작 인스턴트 컵라면 하나로 때우시는 게 내심 안타까웠다.
지금은 하얗게 변해버린 백발과 굵은 주름이 새긴 손과 얼굴을 하고 있지만,
할머니도 과거에는 수줍고 꿈 많던 한 소녀였을 것이다.
배고프고 힘겨웠던 세월 속에서 소녀의 시간은 무심히 흘러가 버리고,
힘겨운 삶의 시간을 지탱하기 위해 온 몸으로 견뎌내며 지금까지 살아왔을 그녀.
이제는 자식 뒷바라지도 끝나고 한 몸 편히 건사해도 좋을텐데..
명절 때 찾아올 손주들 손에 천원 한장이라도 더 쥐어주고 싶어
순간 마음 한 켠이 저릿해져왔다.
나는 여행이라고 들떠 찾아온 이 곳이, 할머니에게는 하루하루 마주하는 삶의 현장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자, 나는 좌판을 더더욱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라면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지나갔던 할머니는 좌판에 이미 앉아 계셨다.
나는 그 좌판 앞에서 내가 살만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좌판 한 귀퉁이에 종이컵에 가득 담긴 짙은 보라빛의 오디가 눈에 들어왔다.
한 컵에 천원. 손에 뭍히지 말고 먹으라고 이쑤시개 하나도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천원 한 장과 오디 한 컵을 맞바꿨다.
오디를 입에 넣자 달콤한 풀내음이 입안에 가득 느껴졌다.
오디가 마음을 잠재우는 약이었을까.
오디 한 컵으로 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 것 같았다.
BY 엘리스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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