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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를 그만두다
한국전쟁 종전 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기 힘든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불과 반세기 만에 엄청난 경제성장을 일궈냈다. 하지만 급격한 경제성장 뒤에 찾아온 정체기에 접어들면서 사회 곳곳에 방치되었던 문제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과거 폭발적인 경제 성장이 끝난 후 지금은 연 평균 5% 아래의 경제 성장률에 이른, 이른바 저성장의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성장이 끝나면 노화의 길에 접어드는 것이 세상만물의 이치인데, 하물며 한 나라의 경제 또한 어떻게 계속 가파른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을까? 어찌보면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는 정책이나 기업이 추구하는 경영방식은 과거 고도 성장기에만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정부는 경제성장에 대한 장밋빛 예측만 내놓으며 경제를 1순위에 놓고 정책을 집행하고 있고, 기업은 '위기경영'이라는 명목하에 직원들을 닦달하고 현금을 쌓아놓은 채 임금인상이나 투자에는 인색하다.
우리는 나라의 '경제성장'이라는 미명하에 OECD 평균 이상을 상회하는 장시간의 노동을 제공하고, 노동이 끝난 뒤에는 소비를 강요당하는 생활에 노출되어 있다. 나는 한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고, 최소한의 돈으로만 삶을 영위해 나갈 수는 없을까? 어딘가에 속해서 하루 절반 이상을 노동하지 않고,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얻을 수 있는 활동을 하면서. 물론 안정적인 거주가 첫번째로 해결이 되어야만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지금 당장은 실천할 수 없지만, 계속 마음 속에 화두로 간직하고 있었다.
서점에 가면 항상 둘러보는 곳이 있다. 새로 나온 책만 따로 모아 놓는 코너인데, 얼마 전 '소비를 그만두다'라는 꽤나 발칙한 제목의 책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인이다. 그는 과거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기에 온몸으로 자본주의를 경험했었고, 지금은 그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일본사회에 그 모순을 개선시키기 위한 화두를 던지는 일본의 지식인이다.
우리나라의 경제, 사회적 흐름은 일본을 뒤따라간다고들 한다.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가까운 미래의 모습은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셈이다. 같은 시대에 먼저 소비자본주의의 모순을 경험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그의 생각이 궁금해서 이 책을 구매하여 읽어보게 되었다.
▲ '소비를 그만두다' 목차
▲ '소비를 그만두다' 목차
:: "소비를 그만두다"
이 책에서 의미하는 '소비'란 살아가는 데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무언가를 원하고 그런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돈을 벌어서 쓰는 행위를 가리킨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일상의 곳곳이 '소비'로 얼룩져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충동구매를 하기도 하고, 별 목적없이 백화점이나 할인마트에서 윈도우 쇼핑을 하다가 꼭 필요하진 않지만, 하나 둘씩 무언가를 사오기도 한다. 어떤 물건을 구매한 지인을 보고 부러움을 느끼면 나도 따라사기도 하고, 티비 드라마에서는 연예인들이 사치품을 두르고 나와 소비를 조장한다. 사회 전체가 소비가 미덕인 양 찬양하는 분위기이다.
이런 소비사회에서 자연히 돈은 사람들의 숭상을 받는 일종의 신흥종교화가 되어버렸고, 순수하게 땀흘려 돈을 버는 사람들보다 돈으로 돈을 쉽게 버는 이상한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사람의 정직한 노동력은 하찮은 것이 되어버렸고, 오직 '스펙'으로 무장하여 몸값을 올리려는 화이트 칼라들이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사람 자체가 '돈'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갑질논란' 또한 인간보다 돈을 중요시해서 나타나게 된 부작용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바탕으로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살고 있지만, 어쩐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에 밀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살고 있다. 부지불식간에 그런 의식이 사회전체에 팽배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돈 때문에 일어나는 정치인과 경제인의 부패, 공무원의 뇌물수수, 돈 많은 일반인들의 갑질... 이 모든 것이 돈을 중시 하는 '경제'만을 중요시 여긴 나머지 '사람'을 하찮게 여긴 결과일 것이다.
[현대 소비자의 소비는 공허한 욕망을 물건으로 채우려는 것이다.]
[시장은 영원히 확대될 수 없다.]
청년실업,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 등 우리사회에 새롭게 위기로 다가온 사회적 문제들의 근본적 원인에는 경제성장만을 너무 중요시 여긴 나머지 '사람'을 무시한 사회적 분위기와 정부 정책에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최근 새롭게 깨닫고 있다.
[더 싸게 팔고 더 싸게 사려는 풍조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 경쟁자가 되어야 하고,
상대가 나를 속이거나 앞지르지 못하게 필사적으로 달려야 한다.]
:: '경제성장을 하지 않는 사회'가 필요하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소비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항하는 저자 나름의 생각과 대안이 여럿 담겨있다. 물론 그 실천은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모순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대안책을 제시한 저자의 담대한 생각에 정말 공감이 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경제 성장을 하지 않는 사회'가 필요하다]라는 단락이었다. 경제성장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나라가 망할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기득권들이 경제성장에서 내세우는 논리는 트리클 다운 즉 '낙수효과'이다. 낙수효과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이것은 '가진자가 더 많이 가지게 되면 큰 나무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듯이 가난한 자에게도 자연히 부가 이동한다'라는 논리이다. 최근 선진국들의 여러 연구에서 낙수효과는 더 이상 없다고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기득권층들은 재분배 시스템을 부정하고 경쟁사회를 정당화 하면서 국가적으로 경제적 불안감을 계속 조장하고 있다. 이런 행위가 기득권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영원한 성장이 가능할 수 있을까?
최근 우리나라의 중산층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을 각종 뉴스 등을 통해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이대로 둔다면 앞으로 1%의 상류층이 99%의 부를 독차지하게 되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저자는 선진국이 나서 기존의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스템의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아직 중산층이 남아있고, 사회적 약자 구제의 기운이 남아 있을 때 시작해야 한다고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는 지금 그 방향의 전환이 시급해 보인다.
그러나 과거로 퇴행하는 듯한 정부의 정책들을 보면 자꾸 한숨이 나온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온 나라의 관심이 '경제성장'에만 쏠려 있고,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위기를 예방하는 정책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만 여겨지는 것 같이 보인다.
이제 성장과 소비보다는, 앞으로 살기 좋은 나라를 어떻게 만들것인지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정부가 나서 경제성장에만 집착하게 되면 국민들의 삶은 이전보다 앞으로가 더 비참해지고 힘들어질 것이다. 성장과 분배 양극으로 이념대립을 하는 것도 이젠 지겹다. 현실을 직시하고, 적절한 경제와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려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던 '소비를 그만두다.' 가끔은 이런 무거운 책도 독서리스트에 올려노음직 하다.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이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BY 엘리스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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