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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일상

손때 묻은 물건이 좋다

엘블 2014. 2. 1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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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때 묻고 낡았지만 정갈한 물건에 더 애착이 간다.

마음만 먹고 돈을 쓸 생각만 하면

얼마든지 비싸고 좋은 물건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물질 만능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본래 나의 천성이 비싸고 좋은 물건 사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건지

그런 물건에 대해 소비하는 행위를 별로 즐기지 않는다.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 대신 손때가 묻어 반들반들하고, 한 귀퉁이에 약간 스크래치도 나 있는

낡았지만 정감가는 물건들에 유독 눈길이 간다.

화려한 사치품들이 즐비한 백화점보다는 빈티지 물건을 판매하는 상점을 거니는 것이

마음이 더 편하고 가슴이 설레인다.


낡은 물건은 그 물건이 존재했던 순간 순간의 기억과 흔적들이 스며 있을 것이다.

그 물건을 소유했던 사람이 느꼈을 감정들.

그 감정들이 잔상처럼 남아 지금 나에게까지 전해지고 있을지도 모를일이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이 낡은 물건을 소유했다는 그 공통점 하나만으로 이런 신비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빨리 변하는 시대이다.

물건의 소비또한 그러하다.

우리는 필요이상으로 많은 것을 새로 구입하고, 필요없어지면 쉽게 버린다.


하지만 나는 손때 묻은 물건이 좋다.

꼭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 아니더라도,

예를 들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옛 선조들의 손길이 스민 유물이나,

엄마의 장롱속에 고이 보관되어 있는 할머니가 들고다니셨던 빈티지스러운 가방 같은 것들 말이다.

꼭 소유하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푸근해진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비싸고 새로운 물건만을 찾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낡은 물건이라고, 유행이 지났다고 홀대받고 그러다 버려지는 많은 물건들이 있다.

정말 회생불능이라면 버려야 맞는 말이겠지만 멀쩡한데 버리는 것은 슬픈일이다.

그 물건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데 쓰레기 취급을 받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물건이 있다면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주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남이 쓰던 물건이라고 찜찜해 하지 말고

그런 물건들 중에서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 쓰는 지혜를 발휘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손길이 스며 있는 그 물건의 기억도 향유하고 자원 낭비도 하지 않고 좋은 일인 것 같다.


옛날에는 나 역시 새물건만이 좋은 것이라고 착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오래된 물건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볼 수 있는 눈을 갖추게 된 것 같다.

철이 든건가. 나이가 든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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