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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사적] 김유신 장군묘
꽃피는 봄날 김유신 장군묘를 다녀왔습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흥무로와는 달리 기품있는 소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는 나즈막한 산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아직까지도 그 이름이 잊혀지지 않고 후대에 널리 알려진 김유신 장군.
그는 신라시대 때의 명장이었습니다.
가야계 출신으로 많은 공을 세워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죠.
그렇기 때문일까요? 김유신과 그 가족들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직도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죠.
(김유신이 동생 문희를 김춘추에게 시집보내기 위해 옷고름을 밟아 찢어지게 만들었다는 일화와
천관녀에게 발길을 끊기 위해 말의 목을 베었다는 일화 등 ^^)
경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서천교라는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조금 걷다 보면
흥무로를 거쳐 김유신 장군묘 입구에 다다릅니다.
묘로 들어가는 입구는 나즈막한 길이 이어지는데, 울창한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여타 왕릉과 견줄만한 크고 위풍당당한 기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일대가 경주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김유신 장군묘는 송화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약간 경사진 언덕길을 올라 걸어가봅니다.
울창한 소나무숲이 있어 공기가 좋아 걷기 좋은 길입니다.
가족이 단체 답사 여행을 온 것 같았습니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거나 효율적으로 둘러보고 싶으면
답사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확실히 이야기를 들으며 둘러보는 경험은 다르거든요.
입장권을 끊고 들어갑니다.
길지 않은 완만한 길이 이어집니다.
저 멀리 위풍당당한 묘가 보이네요.
김유신 장군 묘는 지름만 30미터에 달하는 큰 원형분으로
둘레에는 호석과 난간을 둘렀습니다.
호석에는 평복을 입은 십이지신상이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삼국유사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김유신이 죽은 뒤 흥무대왕으로 봉하였으며, 그 능은 서산 모지사를 동향한 산봉에 있다"
삼국사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문무왕이 그의 부음을 듣고 채백 1천필과 조 2천석을 내고, 군악고취 100인을 보내 금산원에 예장하고,
유사로 하여금 비를 세워 기공을 기하고 민호를 배정하여 묘를 수호하게 하였다"
묘 아래쪽에는 묘를 관리하고 지키는 금산재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신라는 사라졌지만, 신라의 명장 김유신 장군은 역사에 길이 남고 있었습니다.
신라에 대해 자세히 기록된 역사서가 남아있다면 참 좋을텐데
아쉽게도 삼국사기, 삼국유사 그리고 필사본으로 전해진 화랑세기(진위여부가 분분)으로 그 자취를 더듬을 수밖에 없네요.
BY 엘리스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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